더 빠르게 만들 수 있었지만 멈췄다 — 벤틀리 첫 전기차 토르칼의 ‘2.9초’ 선택

전기차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빨라질 수 있다. 모터 출력을 올리면 되니까. 그런데 벤틀리는 첫 순수 전기차를 만들면서 일부러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벤틀리가 2026년 9월 23일 공식 미디어 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토르칼(Torcal) 이야기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토르칼은 최고 888마력(PS)에 벤틀리 역사상 가장 큰 토크인 1,350Nm를 낸다. 시속 100km까지는 2.9초. 벤틀리 연구개발팀은 이 수준을 “의식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고객이 이보다 더 과격한 가속을 불편하게 느낀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빠름보다 편안함, 그리고 새 섀시

그 대신 벤틀리가 힘을 준 곳은 승차감이다. 토르칼은 벤틀리 최초로 완전 능동형 서스펜션을 달아 안티롤바를 없앴다. 뒷바퀴 조향도 기본으로, 최대 5도까지 꺾여 회전 반경을 11.1m로 줄였다. 길이 5m의 대형 SUV를 도심에서도 다루기 쉽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배터리는 800V 구조에 파우치 셀 192개, 순용량 113kWh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최대 600km이고, 400kW 급속충전으로 10%에서 80%까지 16분이면 된다. 배터리 보증은 10년 또는 10만 마일(약 16만km)이다. 짐 공간은 트렁크 460리터에 앞쪽 수납공간 90리터가 더해진다.

드럼·비올라·베이스로 만든 ‘엔진 소리’

가장 벤틀리다운 대목은 소리다. 1919년 첫 모델 이후 벤틀리의 상징이었던 엔진의 박동을 전기차에서 어떻게 살릴지 고민하던 개발팀은, V8 엔진의 ‘리듬’이 핵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전자음을 흉내 내는 대신 드럼, 비올라, 베이스 기타 같은 실제 악기를 연주해 ‘벤틀리 다이내믹 심포니’를 만들었다. 운전자가 요구하는 토크와 속도에 맞춰 소리가 달라지고, 원하면 끌 수도 있다.

세부 소리도 공을 들였다. 방향지시등 소리는 벤틀리 가죽 공방에서 망치로 가죽을 두드리는 소리를 녹음해 썼고, 터치스크린 알림음은 크리스털 잔 소리에서 따왔다. 오디오는 16개 스피커(620W) 기본에, 네임(Naim)과 협업한 28개 스피커(1,780W) 시스템을 고를 수 있다.

벤틀리의 새 얼굴이 처음 붙은 차

토르칼은 지난해 공개된 벤틀리의 새 엠블럼을 처음 다는 차이기도 하다. 네 개의 레이더 제어식 전동 도어, 버튼 하나로 투명도를 바꾸는 유리 지붕, 25개의 레이더·센서·카메라를 갖췄다. 실내에는 영국 서머싯의 직물 회사와 함께 개발한 세계 최초의 100% 메리노 울 자동차 원단이 쓰였다. 생산은 영국 크루 공장에서 맡는다.

한국 독자에게 남는 한 줄

경쟁 브랜드들이 전기차 속도를 늦추는 사이, 벤틀리는 첫 전기차를 내놓으면서도 ‘가장 빠른 벤틀리’가 아니라 ‘가장 편안한 벤틀리’를 목표로 삼았다. 제로백 경쟁에 지친 시장에, 럭셔리 전기차가 무엇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답안지다.

※ 출력·토크·가속·배터리·충전·섀시·사운드 관련 내용은 벤틀리 미디어 공식 보도자료(2026-09-23)를 기준으로 했다. 국내 가격과 출시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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